1953년 1월 29일 중화민국(대만)의
 윈린(雲林)현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부친은 중국의 허베이성(河北省),
모친은 산둥성(山東省)

출신으로 둘 다 본토 출신이다.

부친은 원래 국민혁명군(국부군)의 직업군인으로,
국공내전 후에
 
만으로 쫓겨왔다.
그의 영향인지 군 위문공연에 열심히 활동하였고,
중화민국에서는
'군인들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중화권 및 일본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중화민국, 홍콩,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까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며 
"아시아의 가희(歌姫)"라 불렸다.   ( 하단에 계속 ) 









앨범명 : テレサㆍテン/全曲集’92
발매년 : 1992 년




 

 


01 悲しみと踊らせて
02 戀唄綴り
03 眞夏の果實
04 つぐない
05 涙の条件
06 恋人たちの神話
07 人生いろいろ
08 我愛
09 香港

10 悲しい自由
11 愛人(あいじん)
12 別れの予感

13 空港(くうこう)
14 川の流れのように
15 花
16 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




 



상단에서  이어짐 )
국내 에서는 영화 첨밀밀이 소개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본명은 등려균(鄧麗筠; 덩리쥔)이나, 데뷔 후 등려군(鄧麗君; 덩리쥔)으로 불렸고
영문 이름은 Teresa Teng으로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렸다.

그녀는 중화민국의 공식어인 푸퉁화를 비롯, 민난어, 광둥어, 일본어 및 영어로 된 노래들을 불렀고,
중국어로 된 노래는 1000여곡, 일본어로 된 노래도 260여곡에 달한다.

73년에는 홍콩에서 만난 '도라스(トーラス)'의 사장 후나키(舟木稔)를 만나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3년부터 시작한 일본 진출에서 아이돌 계열의 노래인 '오늘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
 를 취입했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자 곧 엔카(演歌) 계열로 전환하여
'공항(空港; くうこう)'을 취입,
 
대히트를 하여
당시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 인도네시아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국외 추방당했다.
이 후 1984년까지 미국, 홍콩,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다 일본시장에 재입성, '속죄(償還; つぐない)',
'애인(愛人; あいじん)'이
각각 150여만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가
 200여만 매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전일본 유선방송 대상(全日本有線放送大賞)' 최초의
동서(東西) 유선 대상 3회 연속 대상 및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85년 12월에는 생전 마지막이 되는 솔로 콘서트를 NHK홀에서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1985년에는 조용필의 일본 활동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
(단, 최초 취입은 1983년 渥美二郞. 이후 계은숙, 美空ひばり, 森昌子 등이 취입/노래).  

1987년 이후 일본에서 그다지 활동하지 않다가 1994년 11월 NHK '가요 자선콘서트
(歌謡チャリティーコンサート)'에 출연하였다.

1979년 위조여권 사용 이후 중국어권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녀 자신의 오리지널 노래도 흥행했지만, 주로 일본인으로
태어나 만주국에서 활동한 이향란(李香蘭; 山口淑子)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곡들에는 '夜來香', '不了情' 등이 있다.
그러나 대만 출신이 문제가 되었는지, 이향란이 만주국(일본 괴뢰국) 찬양,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귀국 활동
을 한
이유가 문제가 되었는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1983년까지(실제로는 양안관계가 해소된 1987년까지)
등려군의 노래를 금하였다.
등려군은 천안문사건 반대집회 등 중국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였고, '何日君再来'와 같은 항일노래도 불렀다.
1987년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활동적인 모습은 그다지 없었고,
홍콩 및 대만에서 활동만 유지하다
1990년 이후 홍콩 반환 등의 문제로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중국대륙에서 금지곡이었던 그녀의 노래는 대중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많은 소문과 유언비어, 특히 콘서트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양안관계 해소 후 실제로 그녀는 그러한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천안문사태를 야기한 공산당정부에 실망,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1995년 5월 8일,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던 14세 연하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 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호텔 에 투숙중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사망, 향년 42세.
같은 달 28일 중화민국의 타이베이에서 국장급의 장례가 치뤄져 전세계 에서 3 만여명의 팬들이 몰렸고,
그녀의 관은 중화민국 국기와 국민당 당기로 덮였다.
현재 묘소는 타이페이 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고,사후 50년 정도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Posted by 레세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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